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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8일 - 요한 웨슬리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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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리 Ⅰ


다음주는 요한 웨슬리가 1738년 5월 24일에 가슴이 뜨거워지며 자기 죄를 

고백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은 “회심의 경험”을 기념하는 주일이기에 

웨슬리 목사님에 대한 글을 나누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요한 웨슬리의 생애를 구분한다면 회심전과 회심후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1703년 6월 17일 영국의 Lincolnshire의 Epworth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국교회의 담임목사인 사무엘 웨슬리와 수잔 웨슬리 사이에서 19남매 중의 

15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웨슬리의 실제 이름은 요한 벤자민 웨슬리였지만 

Middle name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은 시골에서 

보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인격의 기초가 만들어졌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6살 때 목사관에 일어난 화재로 집이 무너지기 직전 구출되면서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뜻이 이 아이에게 있다고 믿고, 사명감을 가지고 

키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요한 웨슬리도 불속에서 살아난 이야기를 종종 들으며 

자랐고, 자신을 “불속에서 꺼낸 타다 남은 막대기”라고 고백하며 

이 화재사건이 자신을 향한 부르심과 계시라고 믿고,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사랑과 성화의 삶을 살았습니다.


웨슬리는 어려서부터 늘 진지하고 학구적 기질을 가지고 모든 일을 이성과 

양심에 꼭 맞게 살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도덕에 맞고 맞지 

않음을 확인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웨슬리의 유년 시절을 아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합리적이고 태도는 

진지하고 행동은 도덕적이 아이”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성과 양심과 신앙에 따라서 행동하는 아이였고, 그의 삶의 태도가 그의 

신학, ‘Wesleyan Quadrilateral’로 나타났고 Albert C. Outler에 의해서 

재조명되었습니다. 4가지의 sources(근원)을 가지고 신학적 사고를 하면서 

진리와 도덕적 면을 점검하며 분변하는 신학적 결론에 이르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말로는 신학의 4중 표준(신앙원리)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개신교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며 삶의 생활 수칙과 윤리관을 

정리합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성경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권위를 가지면서 

세가지 다른 보조 원칙을 적용하며 신앙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전통”, “이성”, “경험”을 통한 접근방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신앙의 문제에 접할 때 우선 성서가 어떻게 이 문제와 현상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성서가 핵무기, 또는 인터넷 게임 등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고 있는 부분은 교회의 전통에서 어떻게 입장을 취한 부분이 있는 가를 살펴보고, 우리의 이성이 어떤 게 해답, 또는 해법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 또 우리의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말해주는지 살펴보면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원리 중에 “이성과 경험” 역시 

어린 시절부터의 그의 성품과 경험 속에서 자리잡아온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목회자인 부모님 아래서 특별히 아버지로부터 신학과 영국 국교회의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고, 또 어머니로 부터는 청교도의 경건주의 신앙을 몸으로 

배웠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냉철하고 차분한 질서를 닮았다고 합니다. 

누이들이 많은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란 웨슬리는 “남성적이기 보다는 여성적이며 

모성적인 요소가 강했다고” 합니다. (김진두 ‘요한 웨슬리의 생애’, p.26)


그의 어머니 수잔나는 엄격한 규칙을 만들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다음주는 수잔나 어머니의 규칙이 무엇이였고, 

이 규칙을 따라 어른으로 성장하는 웨슬리 자신에게 어떤 생활 규칙을 적용하며 

살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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